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읊조리고 기록하고 마음에 새기다 /일상의 단편과 에세이

오믈렛에서 배운 교훈

나는 나름, 요리 하는 남자이다. 


결혼을 한 이후에 어쩌다보니 

변변치 않은 요리 실력이지만 아내 보다는 내가 주로 부엌에 서는 일이 많아졌다.


마셰코, 냉부해와 같이 평소 요리, 쿡방을 즐겨보는 탓에 

아내에게 내가 요리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처럼 비춰졌는지도 모르겠다. 


잘게 썰은 스팸 햄을 볶아서 하얀 쌀밥 아래 깔고

그 위에 계란 후라이를 하나 얹은 후, 간장으로 쓱쓱 비벼서 내 놓아도 

이 세상 어떤 요리보다 최고로 맛있다고 이야기해주는 아내 덕분에 요리에 점점 재미를 붙여가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그것이 아내의 의도적인 전략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매주 수요일 동네에서 열리는 장에서 계란 한 판을 사와서 

몇일 전 아침에는 오믈렛을 만들어보았다. 


여행을 갔을 때 호텔 조식이나 뷔페에서 나왔던 오믈렛을 떠올리며 

파, 양파, 파프리카 같은 집에 있는 야채들과 햄을 넣고 

후추와 소금, 그리고 버터로 간단하게 간을 하여 처음으로 '계란말이를 빙자한 오믈렛'을 만들었다.


방송에서 보았던 부드럽고 촉촉해보이는 프렌치 식 오믈렛은 아니였지만  

일단 비주얼은 여느 오믈렛과 달라보이지 않았고, 

게다가 계란옷이 찢어지지 않은 요리를 만들었다는 만족감에 내 스스로가 기특하게 여겨졌다. 

그리고 맛을 본 아내 역시 꽤 만족스러워 하였기에, 처음 한 요리 치고 이 정도면 꽤 훌륭하게 만들었다고 위안하였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기 전 불쑥 아침에 만든 오믈렛이 생각나, 농담삼아 아내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하였다. 


"새무(아내와 나의 애칭), 내가 오늘 아침에 만든게 실은 오믈렛인지, 계란말이 인지 모르겠어. 도대체 무슨 요리였을까? ㅎㅎ"

"새무, 세상이 정해놓은 범주에 속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요. 새무가 오늘 한 요리는 세상에 없는 최고의 요리였어요."


아내의 말을 곰곰이 곱씹어보며, 한 가지 깨달은 사실이 있다. 


'세상이 정해놓은 범주에 속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당신이 보여주는 있는 모습 그대로, 그 자체로 괜찮다' 라는 뜻이다. 

그 표현은 '사랑'의 다른 말이다. 

사랑은 '있는 모습 그대로 당신을 기꺼이 감당하겠다'라는 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있는 모습 그대로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극강의 관용이자 최고의 배려이다. 


그래서 나는 실은 아내가 나한테 한 말이 '당신을 사랑해'라는 것을 알았다. 

'사랑'이 있으니 세상이 정해놓은 범주에 속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한 것이다.  


지금까지 어쩌면 나는 세상이 정해놓은 범주에 속하려고 그렇게 기를 쓰고 살아왔는지 모른다. 

목표로 했던 세상이 정해놓은 범주에 속하지 못하게 되면 스스로 실망하고, 자책을 하기도 하였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열심히' 라는 것도, '앞으로'라는 방향의 기준 자체도 

'세상이 정해놓은 범주' 안에서 만들어진 기준이었고, 그것이 나의 위치를 판단하게 되는 잣대가 되었다.  

내 인생의 행복조건을 세상이 정해놓은 범주에 맞추어놓고 

그것에 속하지 않으면 스스로 부족하고 형편없는 사람이 되는 것과 같은 감정을 경험한 적도 있었다. 


회사를 그만 둔 후 이제 거의 2달이라는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이전에는 국내 최고 IT회사의 교육담당자라는 타이틀이 사회적으로 내가 속해있는 범주였고 나를 지탱해주는 보이지 않는 힘이었다. 

보이지 않게 나를 지켜주었던 지위나 타이틀보다 

내가 하는 일에서 가치있는 의미를 발견하고 건강한 영향력을 주고 받으며 성장하고자 하는 욕심과 목표가 있었기에 

꽤나 당차게 회사를 그만두었고, 사회적으로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몸이 되었다.

어려웠지만 이런 결정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든든하게 나를 믿어주고 끊임없는 신뢰를 보여주는 아내의 사랑 덕분이었다. 


물론 지금도 새로운 도전을 하는 과정 속에서 

실패를 경험하기도 하고 그에 따라 실망과 좌절을 느끼기도 하지만

아내가 이야기 해준 것처럼 나라는 사람의 존재가치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나는 결국, 나였다. 


세상에 '사랑'이라는 것이 우리 일상의 눈에 보이는 곳에 있다면

사람들이 각자가 생각하는 인생의 기준과 범주는 조금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오믈렛이든 계란말이든, 그것이 달걀로 만든 음식인 것은 변함이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음식의 맛을 충분히 즐기고자 하는 마음과 즐길 수 있음에 대한 감사함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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