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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놀이가 되다 /인생에 필요한 영감

'미안합니다' 보다는 '내가 잘못했습니다'

출처 : 예병일의 경제노트 _신경숙의 사과, 이재용의 사과 





2010년 미국 CNN은 '완벽한 사과를 하는 법'이란 보도를 했다. 이를 통해 자신이 잘못한 것이 흙 한 주먹 정도라면 이를 산처럼 크게 만들라고 강조했다. 즉 잘못을 축소하려 하지 말고 과장하라는 것이다.
사과 주체가 자기 잘못을 크게 부풀릴 때 여론이나 피해자는 "저 사람이 그래도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아는가 보군" 하면서 일종의 안심을 하게 된다. 
 
한편, 그렇게 했다가 법정에서 불리해질 수도 있다고 걱정할 수 있다. 과연 그럴까?
땅콩회항의 경우, 자기 잘못을 축소해서 여론을 악화시키고 각종 수사가 더 강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사과를 회피하거나 잘못된 사과를 하는 것이 오히려 정상참작의 여지를 스스로 줄인 셈이다. 사과는 간을 보며 하는 것이 아니다. 사과문을 띄운 뒤 일부 직책에서 물러났다가, 여론이 악화되자 직접 나서고 또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고... 사과 횟수를 늘리면서 내놔야 하는 해결책은 점점 커지지만 이처럼 간을 보면서 하는 사과는 효력을 발휘하기 힘들다. (161쪽)


'제대로 사과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기 정당화'를 하려는 우리 인간의 심리 때문에 그렇습니다. 
"실수를 한 건 맞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렇게까지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은 아니잖아", "본의는 아니었어",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잖아"...
 
그래서 그런 생각에 사과를 잘못했다가, 더 큰 어려움에 빠지는 기업이나 개인들이 많습니다.
 
지난 23일, 같은 날 있었던 신경숙 작가의 사과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과. 많은 사람들이 주목했다는 점은 동일했지만, 그 모습은 많이 달랐습니다. 물론 결과도 다르게 됐지요. 
 
사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로 '인정'입니다. 그래서 사과의 문장은 "미안합니다/유감입니다(I am sorry)"가 아니라, "내가 잘못했습니다(I was wrong)"이어야 합니다. 억울해하거나 구구절절 변명하지 말고, 잘못을 분명하고 간결하게 인정하라는 얘깁니다. 태도의 문제이지요. 저자인 김호 대표의 조언입니다. 
둘째로 '시점'이 중요합니다. 사과를 해야하는 상황이라고 판단되면, 가급적 빨리 하는 것이 좋습니다. 
셋째는 '축소'해서는 안됩니다. CNN이 '완벽한 사과를 하는 법'이란 보도에서 이야기했듯이, 자신이 잘못한 것이 흙 한 주먹 정도라면 이를 산처럼 크게 만드는 것이 현명합니다. 잘못을 축소하려 하지 말고 오히려 크게 인정하라는 것이지요. 이 모든 것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화끈하게 사과하라" 정도가 되겠습니다.
 
이런 사과의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가는, 사과를 하고도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사과를 잘못해 위기대응에 실패한 대표적인 케이스가 대한항공의 '땅콩회항'이었지요. 당시 대한항공은 회사, 회장, 조현아 전 부사장이 차례로 모두 사과했지만 여론은 계속 악화됐고, 결국 조 전 부사장은 구속됐습니다.
 
신경숙 작가의 23일의 사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선 독자에 대한 공개적인 공식사과가 아닌, 한 신문사를 '선택'해 인터뷰 기사로 입장을 표명한 형식이 현명하지 못했습니다. 내용은 더 문제였지요. 경향신문의 기사 제목은 '[단독 인터뷰] 신경숙 “표절 지적, 맞다는 생각…독자들께 사과”'였습니다. 무엇보다 잘못을 분명하게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기자 제목은 '사과'로 나왔지만, 인터뷰 내용은 사과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았습니다.
시점도 늦었습니다. 16일 처음 문제가 되자, 17일 창작과비평 출판사에 보낸 메일을 통해 "오래 전 '금각사' 외엔 읽어본 적 없는 작가로 해당 작품('우국')은 알지 못한다...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런 일은 작가에겐 상처만 남는 일이라 대응하지 않겠다"며 표절 의혹을 부인했고, 여론이 악화되자 23일에서야 애매한 입장을 밝힌 것입니다.
 
"아무리 지난 기억을 뒤져봐도 '우국'을 읽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제는 나도 내 기억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임기응변식 절필 선언은 할 수 없다. 나에게 문학은 목숨과 같은 것이어서 글쓰기를 그친다면 살아도 살아있는 게 아니다. 원고를 써서 항아리에 묻더라도, 문학이란 땅에서 넘어졌으니까 그 땅을 짚고 일어나겠다"
 
'억울함'이 가득 담긴, 이런 '수사적인 표현'도 사람들의 반감을 불러왔습니다. 결국 이 '인터뷰 사과'로 상황은 호전되기는커녕 더 크게 악화됐습니다.
 
반면에 이재용 부회장의 23일 사과는 형식과 내용면에서 비교가 됐습니다. 우선 형식이 공식 사과 기자회견이었지요.
 
"사과드립니다. 저희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감염과 확산을 막지 못해 국민 여러분께 너무 큰 고통과 걱정을 끼쳐 드렸습니다. 머리 숙여 사죄합니다... 저희는 국민 여러분의 기대와 신뢰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제 자신 참담한 심정입니다. 책임을 통감합니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내용면에서는 현명하게도 변명하지 않았고, 억울해하는 느낌을 주지도 않았습니다. 잘못을 분명하게 인정했고, 자신의 책임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사실 '자기 정당화' 경향은 어느정도 인간의 본성입니다. 담배가 건강에 나쁘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흡연자들은 이렇게 자기 합리화를 하기 쉽습니다. "몸에 나쁘긴 하지만, 그래도 담배를 피우면 혼자서 잠시 돌아보는 시간도 갖고, 스트레스도 푸는 효과가 있어..." 그래야 마음이 편해지니까요. 
 
'땅콩회항'의 조현아 전 부사장도 아마 이렇게 '자기 정당화'를 했을 겁니다. "내가 실수을 하긴 했지만, 고객서비스를 책임지는 부사장의 입장에서 직원의 업무방식을 지적한 것인데 뭐 그렇게 큰 잘못을 한 걸까..."
 
이렇게 자기 정당화를 하기 시작하면 조금씩 억울한 느낌이 들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점점 더 '제대로된 사과'가 나오기 힘들어집니다. 삼성서울병원은 메르스가 생소한 질병이었던 당시 초기 국면에서는 소극적이었던 질병관리본부를 채근해 1호 환자를 신속히 확진해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은 사과문에 변명이나 억울함을 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대로된 사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커다란 위기를 겪었지만, 신경숙 작가와 이재용 부회장은 다른 모습의 사과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재용 부회장은 이제 '사과 이후'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해 결정하는 단계로 나아갔습니다. 물론 여론은 그가 할 실행의 내용에 주목하고 또 한 번 평가를 내리겠지요.
 
그러나 신경숙 작가는, 본인이 정말 위기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공개석상에 나와 사과부터 다시 제대로 해야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됐습니다. 그녀는 사과를 제대로 안했다가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들어갔습니다..
 
위기가 찾아왔을 때는 '제대로 사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럴 때, 사과에 담을 문장은 변명이나 "미안합니다/유감입니다(I am sorry)"가 아니라, "내가 잘못했습니다(I was wrong)"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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