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읊조리고 기록하고 마음에 새기다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는 다른 이의 글

우리를 피로하게 만드는 '너무 많은 것들'

 

만병 원인은 지나치고 짙은 것… 속도와 물량 중심이 재앙 불러
결핍의 아름다움에 눈 돌려야 천박하고 허탈한 문화貧國 벗어나
생각하는 성숙 사회 만들려면 책 읽는 '성찰의 가을' 필요해

 

 

북구(北歐) 도시의 한 시장(市長)은 밤에도 낮처럼 환하게 불을 밝히는 가로등을 얼마쯤 꺼버렸다고 한다. 시민에게 밤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별들을 되찾아 주기 위해서였다. 그는 시인 같은 상상력을 가진 시장이었던 것 같다. 밝은 가로등이 시민의 안전과 범죄 방지를 위한 것임을 잘 알지만 그는 낮 동안 지친 시민들이 밤의 광활한 신비를 느끼고 별을 보는 것이 더 행복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리라.

살인적인 폭염과 태풍이 가고 가을이 오고 있다. 올림픽 메달의 환호도 가고 바야흐로 선거철이 다가오고 있다. 폭염도 태풍도 과다(過多)가 주는 재앙이었는데 다시 정치의 태풍이 몰려올 것 같아 좀 걱정이 된다. 온갖 구호와 공약과 핏발선 공격의 언어가 또다시 우리의 가을을 어지럽게 흔들지도 모른다.

이번 가을은 무엇보다 사유와 겸허로 가득한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편리한 인터넷과 휴대폰보다 숲 속의 나무 등걸이나 수북한 낙엽 위에 앉아 책을 곁에 두고 느리게 하늘을 보며 삶에 대해, 스스로에 대해 정갈하게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 보았으면 좋겠다. 주식 전광판이나 텔레비전 화면, 휴대폰 문자를 들여다보는 시간보다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는 시간이 더 길고, 잠시 비망록을 꺼내 일기나 편지를 써보아도 좋을 것이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저기 저기 저, 가을 꽃자리/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시 '푸르른 날') 지구 위에 한국의 시인 미당(未堂) 서정주 말고 누구도 단풍을 향해 초록이 지쳐 단풍 든다고 표현한 것을 본 적이 없다. "연꽃/만나러 가는/바람 아니라/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시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같이') 이 가을이 그렇게 소소하고 가볍고 검박했으면 좋겠다.

만병(萬病)의 해독은 모두 과잉한 것, 짙은[濃] 것에서 온다고 하는데 우리가 미친 속도와 물량 중심의 사고에 함몰된 것은 언제부터인가. 자연이 주는 재앙과 수많은 문명 과잉의 폐해가 사람을 온통 지배해 버렸으니 참 섬뜩하다. 오래전 '너무 많은 것들'이라는 시를 통하여 미국 시인 앨런 긴즈버그는 문명시대의 재앙을 울부짖는 어조로 노래했지만, 오늘날 우리 주위에 여전히 넘치는 '너무 많은 것들'은 삶의 피로와 부박함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너무 많은 컴퓨터, 너무 많은 속도, 너무 많은 정치, 너무 많은 쓰레기, 너무 많은 경쟁, 자동차, 휴대폰, 비만, 성형, 커피, 정력제, 살코기, 종교, 은행, 욕심, 조급증, 애국심, 스트레스, 성범죄, 우울, 불안, 뻔뻔함, 음주, 모텔, 억울함, 노동, 가난, 거짓, 부패, 자살, 패거리…."

빠르고 많다는 것이 우월의 표지는 아니다. 속도와 물량은 때로 결핍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무참히 앗아간다. "너무 부족한 고요, 너무 부족한 겸손, 너무 부족한 유머, 느림, 독서, 침묵, 기다림, 여유, 몰입, 절제, 나눔, 배려, 상상력, 개성… 그리고 너무 부족한 사색과 지성과 진실…."

이제 OECD 회원 국가가 되었다고, 또 G20 정상회의 개최국이요, 올림픽 메달 순위 5위이면서 국가 신용평가 등급이 상향되었다고 자부하면서도 여전히 가슴 한쪽이 허전한 것은 이 때문이다. 철학과 인문이 바탕이 되지 않는 문화 빈국(貧國)에 속도와 물량의 팽배가 가져온 허탈과 외피 중심의 천박한 사회가 그 이유인 것이다. 이번 대선의 승자는 지금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이 '너무 많은 것들'과 대결하는 가운데 그 극복의 철학을 제시하는 힘과 실천의 비전을 바탕으로 일어서야 할 것 같다.

가을이 왔다. 여기저기서 '파이팅!' '파이팅!'을 외치며 등을 떠미는 것이 우리 사회를 역동적으로 만들었고, '하면 된다'고 다소 거칠고 맹목적으로 밀어붙인 자율 타율의 제도가 긍정 에너지를 만들기도 했지만 이제 그것이 주는 성과의 한계 시점에 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제 과정도 중시하는 합리적인 성숙 사회를 향한 철학이 새로 제시되어야 하는 시점인 것이다.

생각하는 사회, 기본이 튼튼하고 그 위에 새로운 철학이 숨 쉬는 건강한 인문 사회로 시급히 전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책 읽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 같다. 책을 읽지 않고 성공한 사람도 드물고 책을 읽지 않고 행복한 사람도 드물다. 가로등을 끄고 밤의 아름다움을 깊이 느끼고 숨은 별들을 되찾듯이 진정 깊고 고요한 성찰의 가을을 만나고 싶다. 적어도 이번 대선은 후보도 유권자도 목에 핏줄을 세우는 선심성 구호나 열띤 당원들이 일으키는 바람에 휘몰리는 일이 없이 진중하고 깊은 차원에서 행해지기를 기대해본다.

 

 

_ 조선일보 사외칼럼_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9/02/201209020136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