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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놀이가 되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얻은 생각

비빔밥의 리더십


 

 

성상현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퀴즈 하나. ‘원숭이, 팬더곰, 바나나 가운데 관련 있는 것 2개를 고르시오.’ 여러분의 답은? 이 문제에 대해 동양인은 대부분 원숭이와 바나나를 고른다. 원숭이는 바나나를 좋아한다는 서로 간의 관계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서양인은 대부분 원숭이와 팬더곰을 고른다. 포유류라는 공통의 속성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니스벳이라는 심리학자는 이렇게 선택 패턴이 다른 이유를 동양인의 관계 중심적 사고방식과 서양인의 속성 중심적 사고방식의 차이, 즉 생각의 지도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이 질문에 정답은 없다. 팬더곰과 바나나를 짝지을 수도 있다. 생각은 자유니까.

 

차이는 곳곳에서 드러난다. 전통적인 동양의 초상화는 인물뿐 아니라 배경에도 의미를 넣어 그림으로써 인물의 사회적 지위를 짐작할 수 있는 단서를 담고 있다. 서양의 초상화는 인물 자체의 모습을 클로즈업하고 배경을 흐릿하게 처리한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대상 자체의 속성에 집중하는 서구인의 사고방식과 주변 배경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동양인의 사고방식의 차이를 그림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시대의 사조와 화풍에 따른 변화를 접어둘 때의 이야기다. 지금도 관광지에서 한국인이나 중국인, 일본인에게 사진 한 장 찍어 달라고 부탁하면 서양인에 비해 배경을 크게 잡고 사람을 작게 찍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어느 것이 더 나은 그림이고 사진인지에 대한 답은 없다. 다만 다를 뿐이다.

 

한국 기업에서 외국인들이 함께 일하는 것이 이제 매우 흔하게 됐다. 외국인들의 언어와 외모, 식성 등 겉으로 드러나는 차이는 쉽게 지각할 수 있기 때문에 함께 어울리는데 지장이 없도록 서로 배려하기가 쉽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생각의 차이는 자칫 간과하기 쉽다. 이 점은 여성인력과 남성인력, 고령자와 신세대 간에도 마찬가지이다. 서로 하는 일이 다른 사람 간에도 그렇다. 엔지니어와 영업인력, 공채사원과 경력사원 간에도 그렇고 출신학교와 출신지역이 다른 사람 간에도 마찬가지다. 조직 구성원들 간에 보이는 차이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차이가 공존한다. 그리고 그러한 차이들이 갈수록 커져 가고 있는 것이 우리가 처한 조직의 변화 트렌드다.

 

그런데 이런 차이가 차별되면 갈등의 씨앗이 된다. 그러나 차이가 차이로서 존중되면 가치창출의 원천이 된다. 양날의 칼과 같고 동전의 양면과 같다. 배경이 다른 사람들은 사물을 보는 관점이 다르고 문제를 해석하는 시각이 다르다. 시장이 잘 작동되면 균형점을 찾아 사회적 후생이 극대화되는 것처럼, 서로 다른 생각이 잘 소통되는 조직은 최적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시장경제가 자유를 바탕으로 움직이듯 조직 역시 차이에 대한 존중과 자유로운 소통을 통해 번영한다.

 

그럼 내가 책임지고 있는 팀과 회사는 어떤가? 리더인 나의 생각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일렬종대로 줄 서 있어서 안정적인가? 내 생각과 다른 사람들이 있어서 가시가 박힌 것처럼 불편한가? 불편하지만 옳은 길과 편안하지만 그른 길 중 하나를 택하는 것은 리더의 결단이다. 참으로 선택하기 어려운 길이다. 곁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생각하는 방식까지 같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상적인 조직력의 모습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에 따라 조직에 사람을 채우는 방식도 달라질 것이다. 채용도 승진도 배치도 리더의 생각에 따라 달라진다. 리더가 생각의 그릇이 크면 조직도 그만큼 커질 것이다.

 

하급의 리더는 자신의 생각을 지지하는 사람으로 조직을 가득 채운다.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을 충직한 사람이라 생각하며 질서정연한 위계질서에 흡족해한다. 일사불란한 조직력을 자랑하다 결국 변화를 읽는 눈이 멀고 불나비처럼 불 속으로 사라진다. 중급의 리더는 서로 다른 차이를 수용하지만 그들의 생각을 생산적으로 집결해내지 못한다. 상급의 리더는 생각의 차이를 자유롭게 용인하면서도 조직목표를 향해 차이를 통합해 낸다. 최상의 리더는 차이를 더욱 촉진시키고 그 차이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 

 

비빔밥도 샐러드도 여러 재료가 본래의 맛을 잘 간직하면서도 서로 잘 어우러져야 맛있다. 한 가지 재료만으로는 좋은 밥상을 차릴 수 없고 맛있다고 한 가지만 편식하면 병이 난다. 집단지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다양한 인력구성이 좋다. 그 선두에는 리더가 있다. 결국 기업의 크기는 리더십의 크기이다. 세계적인 기업인지 지역기업인지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다양성에 있다. 작지만 큰 나라를 만드는 것도 다양성을 어떻게 품느냐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