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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놀이가 되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얻은 생각

공감능력은 독심술이 아니다

사람들 마음을 움직이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인데, 그러한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은 보이지도 않는 세계에 대해 통제력을 발휘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경영의 핵심 중 하나가 '사람을 남기는 장사'를 하는 것이라는 점을 고려해 보면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통제력을 얻는 것, 즉 뛰어난 공감(empathy) 능력을 갖추는 것은 CEO가 갖춰야 할 중요한 자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사람들은 뛰어난 공감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사람들 마음을 잘 읽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리처드 버튼(Sir Richard Francis Burtonㆍ사진) 사례는 이러한 문제와 관련해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인류사회에서 타인 마음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 가장 탁월한 사람 중 하나로 리처드 버튼이라는 19세기 지식인이 있었다.
그는 군인이자 인류학자였으며 시인이자 번역가인 동시에 최고 언어학자 중 한 명이었다.
또 그는 의학자인 동시에 지질학자였으며 유명한 검술사이며 탁월한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이기도 했다.

19세기에 버튼이 보여준 행적은 가히 전설적이라 할 만한 것이었다.
그는 수십 개 나라를 여행하면서 그때마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이해하는지를 연구하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그 첫 단계로 그는 그 나라 언어를 배우는 데 전념했는데 마치 그 모습이 알코올에 중독된 사람 같은 인상을 주었다고 한다.
그 결과 그는 29개 언어와 40개 이상 방언을 사용할 수 있는 경이적인 언어적 능력을 갖게 되었다.
그의 부인에 따르면 그는 타인 마음을 읽는 데 천재적인 재능을 갖고 있어서 언제 어디서나 그가 자기 마음을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었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타인 마음을 너무나도 궁금해했던 나머지 최면술에 빠져들기도 했다.
그는 때때로 허락 없이 최면을 통해 타인 속마음을 엿보다가 들켜서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따라서 그는 사람들 마음을 읽어내는 데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정작 사람들 마음을 움직이는 데 필요한 공감 능력은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일화는 사람들 마음을 읽어내는 능력(독심술)과 마음을 움직이는 공감능력은 별개임을 보여준다.

마음읽기 능력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버튼은 상위 0.0001% 미만에 속하는 천재 중 천재라고 할 수 있다.
만약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버튼처럼 마음읽기 달인이 되어야만 한다면, 평범한 일반 사람들이 효과적인 의사 소통을 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대단히 다행스럽게도 지적으로 정신지체 수준만 아니라면 공감적인 의사 소통을 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공감은 다른 사람의 개인적인 지각세계 안으로 들어가 그 사람 경험을 함께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진정한 공감을 위해서는 표면적인 공감이 아니라 심층 공감이 필요하다.
심층 공감은 중요한 의사결정을 위한 회의 상황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바로 '방안의 코끼리(elephant in the room)'를 다루는 것이다.
방안의 코끼리는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표면적인 공감에 기초한 대화는 마치 방안의 코끼리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진행되기 때문에 봐도 실제로는 보는 것이 아닌 '맹시(盲視)'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심층 공감에 기초한 대화는 우리가 방안의 코끼리를 효과적으로 제거한 후 합리적인 의사결정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고영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 매일경제 CEO심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