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읊조리고 기록하고 마음에 새기다 /일상의 단편과 에세이

아내의 여행


아내가 요 며칠, 친정 부모님과 여행을 떠났다. 


얼마나 좋은 경관에 취해 있는지, 

하루가 넘어가는 이 시간까지 별 다른 연락이 없어 한쪽 마음이 서늘하면서도, 

모처럼 부모님과 함께한 여행에 즐거운 시간을 보낼 것을 생각하면 다행인가 싶기도 하다.  


지난 봄, 내가 홀로 제주 여행을 떠났을 때 아내의 마음이 이러하였으리라. 

당시 아내는 자신의 에버노트에 스스로의 존재 자체도 내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데 방해가 될까봐, 

자기 스스로도 없어져주리라고 생각하였다고 했다. 


원래 잘나지도 않은 남편이지만, 혼자 어디 여행 가는 것에 대해 행여나 다른 처자들의 눈에 들어올까 노심초사하는 성격에, 

남편이 없으면 혼자 끼니도 잘 챙겨먹지 않고 속도 불편해지는 아내다. 

그런 아내가 나를, 그것도 3박4일 동안 혼자 떠나는 여행을 보내준 것은 

당시 정서적으로 지쳐있던 내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회복되었으면 하는 아내의 사랑 덕분이었다. 


아내는 진정 예수님을 알아가듯, 나를 알아가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내가 그녀를 아는 것보다 어쩌면 더 많이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이다 .

그래서 내가 어떤 상황에서 지치고 피곤함을 느끼는지, 

어떻게 해야 회복할 수 있는지를 나보다 먼저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성장은 나의 지경이 열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를 알아가는 것이 성장이라는 것을 지난번 홀로 여행을 통해 깨달았는데, 

그러한 성장이 사실은 사랑을 알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내가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회사에 출근하고 열심히 업무를 하고 있지만

마음 한켠이 조금은 시큰하고 애틋한 마음이 드는 것은 분명 아내에 대한 사랑 때문 일것이다 .

퇴근 후 아무도 없는 빈집에 들어가 거실에 있는 소파에 앉아 침묵안에 갇혀있는 공간을 둘러보면 

거실과 방안 곳곳에 아내의 손길이 닿아있는 물건들만 눈에 들어온다. 


거실 찬장에 누워있는 수저도, 싱크대 안에 놓여있는 선반도, 장식장 안에서 바깥을 바라보고 있는 찻잔도, 

주인을 잃어버린 것처럼, 그들도 내 얼굴만큼이나 무표정해 보인다 .


홀로 여행을 다녀온지 몇달이 지난 이제서야, 내가 이 집을 비웠을 때의 아내의 마음이 어렴풋이 전달되는 것 같다. 

남편이 없으면 불을 끄는 것이 무서워, 어슴푸레한 불빛 하나라도 켜놔야 그제서야 마음을 놓고 잠이 드는 아내가 

내가 없는 그 밤들을 어떻게 지냈을 지, 이제서야 아내가 보냈을 그 불안한 밤들이 내 머리속에 그려진다 . 


사람은 참 어리석다. 

소중함은 늘 어떤 대상이 그 자리를 비웠을 때 발견된다 . 

상대방에 대한 충분한 이해는 빈 자리로 인해 여백이 생겼을 때에야 비로소 채워진다. 


하지만, 

내가 세상에 대해 당당해지고 다시 용기를 낼 수 있는 이유는, 

이런 어리석은 나를 괜찮다고 기꺼이 껴안아주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다.

천번이고 만번이고 기꺼이 용서해주고, 그래서 회복시켜주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다.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이가 나보다 먼저, 앞서서 나를 이해해주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행하시고 계신 사랑은 바로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을 통해 발견된다 .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분을 사랑하듯이, 배우자를 사랑하라는 의미는 실은 이런 의미였나보다. 

예수님을 알아가듯이, 아내를 알아가는 것이 사랑이라는 소중한 사실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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