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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놀이가 되다 /배움을 나의 글로 옮겨보기

HRD관점의 변화

현재 일하고 있는 직장에서 근무하지 2년이 다 되어갑니다.

이전에 제조업 중심의 회사에 있다가 IT기업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교육, 즉 HRD 에 대한 개인적인 업무 관점이 2년 전과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관점의 변화가 생긴 이유가,

이전 회사와 지금의 회사 사이에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익힌 시간에서 관점이 바뀐 것일 수도 있고,

업종의 차이가 일의 접근 방식에 대한 차이를 가지고 온 것일 수도 있고,

조직 문화로 인해 일이 진행되는 형태나 프로세스가 다르기 때문에 변화가 되었을 수도 있지만,

 

저는 무엇보다 HRD를 보는 관점이 변화된 가장 큰 원인을 

'학습에 대한 조직의 성숙도'라고 (지금까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많은 회사에서 HRD활동(교육)이 진행되면, 생각보다 큰 관심을 가지는 것 같지 않습니다.

신입사원 입문교육을 제외하고는 교육에 참가하게 되는 현업부서의 부서장, 심지어 교육 대상자들도 교육에 참가하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기기도 하고, 때로는 '업무 중 잠시 쉬러 온다'는 인식을 가지고 계신 분들도 있습니다. 교육을 일종의 '복리후생제도'와 비슷하게 생각하시는 분도 있고요. 

 

제가 현재 일하고 있는 회사는, 교육 체계나 프로세스가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교육 체계를 잡는 것을 암묵적으로 지양하고 있다고 봐야 정확할 것 같습니다.

흔히 대기업에서 운영하고 있는 교육학점제도가 있지도 않고, 공통/리더십/직무 역량에 따라 직급별/직책별 교육이 수립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심지어 승진 시 승진 대상자들에게 리더십과 팔로워십을 강조하는 그런 교육을 진행하지도 않습니다.

 

그럼 교육을 진행하지 않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상당히 많은 교육이 매일 사내/외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많은 현업부서들로부터 저희 팀에 의뢰가 들어옵니다.

'OOO주제로 세미나를 진행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희 팀 OOO담당자들 대상으로 OOO교육 진행할까 하는데, 괜찮은 강사분 구할 수 있을까요?'

'12월3째주 정도에 30명 정도 OOO주제로 워크숍 진행하려고 해요, 운영 좀 부탁드릴게요'

심지어 이미 강사님을 섭외하고, 강사비까지 협의해서 가지고 오시는 분도 계십니다. 그냥 교육팀은 사람들에게 공지해주고 교육장 셋팅만 해달라는거지요.

 

간단한 스터디로 시작한 것이 세미나로 연결되고, 워크숍이 진행된 후에 해당 부서 정규교육 과정이 되기도 합니다. 저희 러닝 시스템 상에 올라오는 각 법인/부서별 스터디는 매달 활성화 되어 있고, 특강이나 워크숍에서 발표된 자료와 후기도 꾸준하게 게시판을 통해 공유 됩니다.

 

이렇게 회사 구성원들의 학습에 대한 열정과 요구가 높으니, 

이쯤 되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교육팀 근무하기 정말 편하겠네!'

 

맞습니다. 타부서의 요구에 따라 해당사항만 맞춰준다면 정말 편하게 일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교육이라는 것이 재무나 인사 이슈와는 달리, 법적의무교육을 제외하고는 사실 '하면 좋지만, 안해도 그만'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그야말로 할 것만 하고 가만히만 있어도 회사의 재무적 성과에는 당장 큰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다니는 회사의 대다수의 구성원들은 그렇게 만만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 해당 분야에서는 최고라는 특A급 전문가 강사를 모셔놓고 교육을 진행해도,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저희 회사 사람들은 별로 없습니다.

그냥 '가이드'정도로 생각하고 저 강사가 말하는 내용 중에 본인에게 맞는 것은 취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흘려보내는 것이 대다수 입니다.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진 않아.' 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 이 곳 문화 입니다.(물론 부서와 상황에 따라 조금은 다를 수 있겠지만요)  

나쁘게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조금 까칠하고,

좋게 이야기하자면, 다양한 생각을 인정하는 '다양성에 대한 이해'가 다른 회사 보다 조금 더 조직 전반에 확산되어 있습니다.

 

자기들이 교육을 요청하였다고 해서, 그에 맞는 강사를 초빙하였다고 해서 앞에서 강의하는 사람, 또는 진행하는 사람의 말을 100% 수긍하지는 않습니다. '저 사람이 저렇게 말한 의도가 뭐지?', '저렇게 해보면 어떤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거지?', '그래서 회사는, 또는 우리 부서에서는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이야기지?' 라는 것을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이 제가 본 저희 회사 직원들의 특성입니다.  

 

그래서 저희 회사 구성원들은 저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너네 팀은 어떤 역할을 하니?'

'너희는 교육담당자로서 무슨 말을 하고 싶니?'

이 말에 답변을 하기 위해, 회사에서 교육 업무를 하는 저는 끊임없이 고민을 합니다. 

 

고민에 대한 질문은 여기서 부터 시작됩니다.

'나는 OO부서에게 어떤 도움/기여를 줄 수 있을까?' 

'내가 OOO와 같은 일을 해주면 저 부서에게는 어떤 도움이 될까?'

'저 부서가 현재 가지고 있는 고민을 교육적으로 해결해 줄 수는 없을까?'

그리고 이런 고민에서 부터 시작된 구체적인 plan과 solution을 가지고 타부서와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는 것이, 제가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HRD업무를 하는 방식입니다.

 

명확한 규정과 R&R(역할과 책임)에 대한 구분은 없고,

모든 것은 담당 이해관계자간의 미팅, 회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도출됩니다.

예산과 비용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합의된 내용에 따라 법인/부서간에 계약을 진행하고 예산을 여기저기 활용합니다. 현재도 이러한 방식으로 저 혼자 4-5개 정도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다니고 있는 이 회사의 정체성을 IT회사가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회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커뮤니케이션에 따라 일이 진행되는 방식과 형태가 많이 좌우되기 때문이지요. 현업부서에서 교육 요청을 받았을 때, 역할과 범위에 대해 어디까지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비즈니스 적으로 긴밀하게 얽히기도 하고, 단순한 운영 지원 역할을 수행하기도 합니다.

 

이전에는 HR(D)부서가 앞에서 드라이브를 걸고 조직원들을 움직여야 사람들이 참여하고, 그에 맞는 행동양식과 가치관도 교육에서 지속적으로 제공해야한다는 관점이였다면, 현재는 사람들은 스스로 움직일 수 있고, 교육은 자발적 사고와 행동양식을 발현할 수 있도록 자극(가이드)을 줄 뿐 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적어도 현재 제가 있는 이 회사에서는 사람들은 제각각의 생각을 가지고 있고, 그 생각은 존중을 받고 있으며, 그 생각들이 실제 아이디어와 성과를 이루어내고 있으니까요.  

 

많은 HRD담당자들이 HRD의 역할을 '비즈니스의 전략적 파트너' 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대다수의 기업에서 HRD 수준은 아직까지도 운영 수준에 머물러있는 것이 현실인 것 같습니다. 교육 과정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수준을 넘어서, 비즈니스가 더욱 효과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돕고 성과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역할을 수행하고자 하는 것이 대부분 HRD 하는 사람들의 기대감일 것입니다.  (그래서 HRD를 이제 HRD라고 하지 않고 WLP(Workplace Learning&Performance)라는 말로 부르려고 하는 거겠지요)   

 

그를 위해서는 먼저 HRD담당자 스스로의 역량 향상이 필수적이긴 합니다. 

조직에서 니즈가 있어도 그를 아예 발견하지 못하거나 적합한 솔루션을 제시하지 못하면 '비즈니스 파트너'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는 힘들테니까요. 

 

다음으로는 어쩌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과연 당연한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을 진행할 때 마다 사람들의 참여도가 낮아서, 또는 구성원들의 교육 의지가 낮아서 담당자로서 늘 고민이 있었다면, 사실 그 원인은 매년 당연하게 진행해왔던 핵심가치 교육, 리더십 교육 같은 것이 실은 '사람들의 다양한 아이디어와 사고관을 해치는' 좀 더 심하게 이야기하면 '다양성을 말살시켜 창의성을 저해하는' 그런 교육이 아니였는지. 

 

현재는 2015년 이고, 스마트폰 하나로 다양한 아이디어와 정보, 물자가 전세계 에서 동시간에 공유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HRD담당자 스스로가 조직이나 구성원들의 생각과 수준에 대해 면밀한 탐색 없이 조직의 비전과 미션이라는 미명 아래 강의장 한 쪽에 그럴듯한 현수막을 걸어놓고, 책상에는 딱딱한 회사 건물과 로고가 들어간 교재가 놓여있으며, 그리고 몇 시간 동안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야기를 떠드는 강사를 통해 표준화된 회사의 가르침만 전달된다면, 구성원들은 자신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놓아버리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 회사 사람들은 각자의 생각을 존중받기 원하면서도 (적어도 내가 관심있고 필요로 하는 분야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교육에 대한 열정과 관심이 아주 많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