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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놀이가 되다 /배움을 나의 글로 옮겨보기

당신은 자유를 누릴 수 있을 만큼 성숙한 사람입니까?

철학자 헤겔은 인류 역사를 인간의 자유를 확장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로 보았다고 한다. 


조정민 목사님의 책 '왜 예수인가(Why Jesus)'에서 보면

인간은 온전한 자유를 누리기 위해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선악과를 탐했고, 그 결과 인간은 자기중심적인 죄인의 삶을 살아야 했다. 

오늘날의 포스트모더니즘은 절대적인 기준도 절대적인 진리도 없다고 하며 우리 각자가 진리라고 각자 자유한대로 살라고 주장한다.

오랫동안 신본주의를 따르던 인간이 20세기 들어 인본주의의 꽃을 피우며 인간의 자유로운 이성과 과학을 신봉하기 시작하자, 

두번에 걸친 세계대전이 발생하였다. 


조정민 목사님에 의하면 이데올로기(ideology)란 사람의 아이디어(idea)를 아이돌(idol)로 만드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의 생각을 우상화하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계급혁명을 불러일으킨 공산주의가 불러온 학살과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한국전쟁도 이데올로기 전쟁이었다. 

인간은 절대자를 떠나 이성을 신격화하고 신뢰했지만 

이성은 인간의 자유를 극대화해 주기는 커녕 오히려 서로의 목숨을 노리는 칼이 되었다. 


"선과 악을 판단하는 절대자의 자리를 넘볼 때 인간은 허용된 자유마저 빼앗기고 마는 것입니다" (왜 예수인가, 67p)


어떻게보면 인터넷과 기술의 발달도 지금까지 이어져 온 역사와 비슷하게 흘러가는 것 같다. 


인간은 정보의 공유와 더 넓은 세계관의 확보를 위해 인터넷을 만들었지만

오히려 편협된 정보의 독점으로 특정 정보에 의존하는 세계관을 가지게 되었다.  


인간은 좀 더 자유해지기 위해 스마트폰을 만들었고, 

그 결과 자유해지기 보다 오히려 스마트폰에 종속되어 더욱 자유를 갈망하게 되었다.  


자유를 확장하기 위해 수많은 연구와 탐색을 통해 나온 결과물들로 진정한 자유를 경험하게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방식으로, 그 동안 자유해서 자유라고 깨닫지 못한 것들 마저 자유의 범위를 침범당하는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인터넷 뉴스나 기사의 댓글들을 살펴보면 어떤 이슈에 대해서 사람들마다 옳다, 그르다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는 수많은 댓글들이 있다. 

사람들이 옳다고 이야기 하는 것, 혹은 그르다고 이야기 하는 것의 기준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각기 어떤 기준과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의 일들에 대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일까? 

자신이 옳다는 판단 아래 남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어디까지 허용 되어야 할까? 


"절대적 기준을 잃어버리면 상대적 기준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네 기준이나 내 기준이나 무슨 큰 차이가 있냐고 주장합니다. 절대적 기준을 잃고 상대적 기준만 난무할 때 필연적으로 공동체를 지키는 가치관이 붕괴되고 도덕과 윤리가 붕괴됩니다. 믿음을 저버린 인간에게 닥친 불행입니다." (69p)


"자유를 누릴 수 있을 만큼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자유를 부담스러워 합니다." (77p)


"절대적 진리를 경험한 사람들은 자유함이라는 특별한 특징을 갖게 됩니다. 그들은 사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음을 알기에 더 이상 누군가를 나의 기준에 합당하도록 변화시키려 하지 않습니다. 이들의 자유함이란 곧 내 힘으로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바꾸려는 욕망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80p)


우리 사회는, 우리 사람들은, 그리고 당신은 자유를 누릴 수 있을 만큼 성숙한 사람입니까?


나는 진정으로 자유를 누릴 만한 성숙한 사람인지 자문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