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읊조리고 기록하고 마음에 새기다 /일상의 단편과 에세이

'익숙함'에 대한 고찰


하얀 냅킨 한 장을 그 앞에 가지런히 가져다 놓으며 이야기한다.

"난 여기 하얀 곳에 있어서, 그냥 모든 세상과 사람들이 다 하얀줄 알고 있었어요.
근데 어느날 밖에서 이 테이블 색깔처럼 까만색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온거에요.
그게 나에겐 정말 이상해 보이고 정상이 아닌것 처럼 보이죠.
그래서 그에게 이야기 하죠. '넌 이상해, 왜 그런 옷을 입고 있지?' '왜 우리 처럼 하얗지 않아? 좀 하얀 옷을 입을 순 없을까?'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런 내모습이 오히려 이상했죠. 까만 옷을 입은것이 이상한 것도, 그렇다고 하얀 옷을 입은 것이 꼭 정상인 것도 아닌데 말이죠. 내가 있는 이 하얀 세상 밖에는 분명 또 다른 까만 세상도 있을텐데 말이에요.
하얀 것도 까만 것도 어느 것 하나 우월하다고 정상이라고 치부할 순 없는 건데 말이죠....."

꽤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을 법한 열평 남짓한 카페의 안쪽에서 말간 로즈마리를 홀짝거리며 이야기한다. 
이제 막 외출에서 돌아온 가게의 여주인이 차가움을 머금은 입김을 내뿜으며 가게안의 조명을 조절하자 
카페안의 불빛은 땅거미가 질무렵 아직 가시지 않은 햇살의 기운과 슬그머니 다가오는 늦은 오후의 그림자가 맞물리듯, 
더없이 대화하기에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제가 사실 최근에 고민하는 것도, 그런 부분이에요. 익숙함, 이라는 거요...
어느 순간 너무 그 상황이나 분위기에 익숙해 있어서
으레껏, 내가 경험하고 있는 그것이 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불편한 익숙함 이요."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것으로 공감을 표시하며, 블루 멜로우를 다시 입에 가져간다.  
그가 평소에 즐기지 않는 블루멜로우를 선택한 것은 그가 무척이나 호기심이 많은 사람임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블루멜로우의 향이 점점 짙어지는 것처럼, 찻잔의 표면이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초에 반사되어 춤추는 것처럼,
그들의 대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지고, 강약의 춤을추듯 풍성해져갔다.

"물론 익숙해져서 좋은 점도 있어요. 내가 겪고 있는 환경에 대해 더 큰 통찰력을 가질 수도 있고, 또 다른 관점에서 상황을 예의주시할 수도 있겠지요. 또 익숙해지면 편해요. 그런데 두려워요. 내가 보고 있는 이 세상이 정말 다 일까. 라는 생각 떄문에.
이 너머에 분명히 무엇인가 있을텐데, 그 너머에 있는 것을 못볼것 같은, 아니 아예 모르고 살아갈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해요.."

"그런데 행복이라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있는 것 같아요. 돌이켜생각해보면, 늘 내가 행복했던 순간은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 과정속에 있었던 것 같아요. 결과를 생각했다면, 또다른 결정을 했겠지만 내가 원하는 것이 결과가 아니라 과정임을 깨달았을때, 무언가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었어요.사실 난 아무것도 가진게 없어요. 남들보다 뛰어난 능력도, 우월한 학력도, 더많은 물질도... 
그런데 내가 이런 도전을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그분의 덕분인 것 같아요. 결과보다는 과정이라는 진리, 비워내는순간 채워진다는 진리. 그런 진리 안에 거할 수 있기에..."
 
그의 이야기는 카페한쪽에 놓여있는 피아노 건반이 마치  장조와 단조를 번갈아가며 소리를 이어가듯 약간은 격앙된 목소리를 내며 신이나게 이어진다. 평소에 침착하고 좀처럼 큰 목소리를 내지 않는 그가, 이렇게 피아노 가락이 이어지듯 수다쟁이가 된 것은 함께 있는 사람으로 부터 전해지는 향기 때문이리라. 후각이 유난히 발달해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그 앞에 있는 사람이 그가 한손에 쥐고 있는 로즈마리처럼 따뜻한 향긋함을 지니고 있음을 느낀다.       

두 사람은 악기를 연주하듯 대화를 이어나가며, 어느덧 로즈마리와 블루 멜로우를 두잔째 비워낸다. 

시간에 쫓겨 카페문을 나서는 순간, 
서리눈이 내린 밤의 공간을 가르는 선선한 공기가 그들의 얼굴에 닿는다. 

지난 대화로부터 온몸을 감싸고 있는 따스함과 신선한 공기가 맞닿아 웬지모를 두근거림과 설레임을 안겨준다.      

그렇게,그 둘에게 삶은 살포시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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