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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놀이가 되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얻은 생각

조직원의 희생이 불가피하다면

[매일경제][CEO 심리학] 조직원의 희생이 불가피하다면

 

조직 리더는 가끔 조직 구성원들로 하여금 약간씩 희생을 감수하도록 설득해야만 할 때가 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확실한 손실을 감수하기보다는 차라리 다소간 모험을 선택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확실하게 단기적으로 작은 손실을 감수해야만 장기적으로 더 큰 위험 요소를 피할 수 있는 상황에서 그렇게 하지 못해 개인이나 조직이 위기에 봉착하는 사례를 우리는 주위에서 자주 목격하곤 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떨 때 확실한 손실을 기꺼이 감수하는가? 핵심은 시간순서에 있다.
그리고 그보다 한발 더 깊숙이 들어간 기저에는 상상과 감정이라는 것이 있다.

사람들에게 물어보자. 100% 확률로 5만원을 잃는 1안과 25% 확률로 20만원을 잃고 75% 확률로 아무것도 잃지 않는 2안 중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대부분 연구나 실제 인터뷰를 살펴보면 평균적으로 약 80% 사람들이 2안을 선택하겠다고 응답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1안과 2안을 동시에 보여주거나 설명해 주지 않고 순서를 정해 하나씩 제시하면 사람들 선택이 정반대 양상을 띨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방식은 다음과 같다.
먼저 2안 상황을 먼저 설명한다.
그리고는 잠시 사람들을 가만히 둔다.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2안 상황이 얼마나 좋지 않은 것인지,

 즉 20만원이라는 큰돈을 잃을 때 상실감이 얼마나 큰지 등에 대해 상상을 해본다.
상상이라는 것은 참으로 재미있는 힘을 발휘한다.
우리는 어떤 싫은 것에 대해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몸서리치거나 짜증이 나곤 한다.
아직 그 일이 벌어진 것도 아닌데 말이다.
20만원을 잃는다는 상상을 일정 시간 해보면 이제는 당연히 그 상황을 피하고 싶은 욕구도 커진다.

이때 1안을 대안 형태로 보여준다.
그리고는 이렇게 이야기해 준다.
"1안을 선택하면 2안 상황을 피할 수 있다.
" 이러면 70% 사람들이 기꺼이 1안을 받아들여 2안 상황을 피하겠다고 응답한다.
사람들이 확실한 작은 손실을 받아들이겠다고 설득된 것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설득이 이성에 호소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사례는 설득이 결코 그것만 가지고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상상을 할 수 있도록 시간적 여유를 부여함으로써 감성 역시 움직여 주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2안 상황에 대해 나와 상대방이 느끼는 감정이 같아진다.
몇 개 대안을 놓고 그중 더 합리적인 안은 이것이니 그것을 고르라고 하는 양자택일식 강요는 설득이 아니다.
설득 대상자는 기꺼이 희생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니 반감이 생긴다.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것은 설득하는 위치에서 볼 때 자기 목적을 달성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

많은 협상 전문가들이 상대방에게 생각할 시간을 줄 때 오히려 나와 상대방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결과에 더 빨리 다다를 수 있다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나와 상대방이 같은 정서를 갖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설득이다.
왜냐하면 설득의 가장 중요한 기저에는 공감(共感)이라는 것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공감이 이루어지면 화려한 언변이나 치밀한 자료를 통해 설득했을 때보다 훨씬 더 강한 위력을 발휘한다.

그런데 문제는 공감이 그리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같은 감정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돈이 아니라 마음이 담긴 시간 투자가 필요하다.
훌륭한 리더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점 중 하나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과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웃고 슬퍼하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대사회의 큰 흐름 중 하나가 카리스마형 리더에서 공감형 리더로 바뀌고 있다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