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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풍성하게 /읽고-

그리고 저 너머에

 


그리고 저 너머에

저자
M. 스캇 펙, M.스캇 펙 지음
출판사
율리시즈 | 2011-02-2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스캇 펙이 일생 동안 전념해온 카운슬링, 강연, 글쓰기의 정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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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가야 할 길]의 저자 스캇 펙의 3대 시리즈 중 세번째 작품.

정말 그 자체로 독자적인 영혼의 통찰력을 가진 글들이다.

 

아직 경험과 지식이 부족해서 몇번을 곱씹어도 마음으로 이해되지 못한 글들이 더러 있었는데,

몇년후에 다시 이 책을 읽는다면 지금보다 더욱 깊게 공감을 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생각과 의식의 확장, 배움과 성장, 조직에서의 책임과 리더십, 그리고 영성과 은총까지..

삶의 전 부분에서 지표로 삼을만한 명문들이 그의 삶에 대한 깊은 통찰과 영성을 통해 전달된다.

 

 

 


 

두려움이 없다는 것은 용기가 아니다. 두려움이 없다는 것은 일종의 뇌 손상이다.

용기는 두려움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능력이다.

 

배움에는 가장 중심적 역할을 하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 태도, 기질, 가치가 그것이다.

 

우리의 생존은 우리가 속해 있는 기관들이 지속가능한 공동체로 진화해서,

지속적인 학습 조직이 되느냐에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어리석은 이기주의의 길은 모든 고통을 피하려는 것이다.

현명한 이기주의의 길은 어떠한 고통이나 괴로움, 특히 정서적 고통이 생산적인지 또는 파괴적인지를 분별하는 것이다.

 

실존적 고통은 존재의 내재적인 부분이며 적절하게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령, 성장을 하고, 독립적인 인간이 되려는

과정에 겪는 고통, 상호 의존적이고 의존적인 방법을 배우는 데서 겪는 고통, 상실과 포기에 따른 고통 그리고 노년과 죽음의

고통 등이다.

 

삶의 기본적인 선택 중 하나는 현명한 이기주의의 길을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모든 문제들을 회피하는

어리석은 이기주의의 길을 갈 것인가이다.

 

역설적인 사실은,

많은 경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즉 끊임없이 무엇을 해주는 것에 집중하기보다 본래의 모습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때로는 더 큰 사랑의 방식이라는 것이다.

 

품위있게 죽음을 맞는다는 것은 죽음을 배움의 기회로 삼는 선택이며, 영혼의 진정한 존엄성이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육체적 소멸의 과정을 정화의 과정으로 맞는 것이다.

 

"신사란 무심코 타인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 말이 내게 시사하는 바는 때로 다른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이 필요할지도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의도,

즉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행동에 대한 인식이라는 점이다. 이와 같은 인식을 위해서는 의식이 있어야 한다. ]

 

예의란 '의식적인 동기에 의한 조직적 행위이며, 이것은 보다 높은 차원의 힘에 순종하는 윤리'라고 정의한다.

예의바른 사람이 되기 위해 우리는 자신의 동기뿐 아니라 우리가 활동하고 있는 조직 혹은 체제의 동기도

의식해야 된다는 점이다. 예의는 개인적 의식뿐 아니라 조직적 의식도 필요로 한다.

결국 우리가 보다 더 훌륭한 예의에 대한 열망이 클수록 더욱더 체계의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기여에 대한 인식의 부재는 예의 결핍을 초래한다.

이것은 아마도 우리 자신을 더 많이 의식하려는 노력에 짓눌려

조직과 사회에 대한 인식을 발달시킬 여력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다 많은 수의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의식 있게 행동할 뿐 아니라, 정신세계의 구멍을 메우기 위하여

전체체계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의식을 확대하지 않는 한 우리는 보다 더 예의 바른 사회로 발전할 수 없다.

 

'연약함'이라는 용어는 상처를 받기 쉬운 감성적 능력을 말한다.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감성을 가질 것인가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다쳐서 생긴 상처와 피해로 인한 상처의 차이를 구별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효과적인 치유자가 되고 싶다면, 능력의 한도 내에서 끊임없이 우리자신이 상처받는 것을 허용해야 하며,

우리가 받은 상처를 통해서 오로지 다른 사람들을 치유할 수 있으며, 우리 자신도 치유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쪽 눈으로 운다'는 것의 의미는 연약함으로 인한 고통에 미온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피해를 당하지 않아야 된다는 의미다. 이 표현은 감정 이입과 공감의 차이점을 지적하고 있다.

감정이입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느끼고, 어느 정도로 감수하는 능력으로, 언제나 미덕이다.

반면에 공감은 다른 존재와의 공생 관계와 같은 상태를 유지하거나 혹은 그와 완전히 동일시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믿음직한 사람으로서 효과적으로 맡은 직무를 수행할 수 있기 위해서 어느정도의 일관적인 성격

이 필요하다. 그러나 일관성의 어두운 측면은 정신과 의사들이 말하는 저항이다.

성격은 본질적으로 변화에 저항한다.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에 원죄에 굴복할 것인가, 변화에 저항할 것인가, 머물러 있을 것인가 그리고 퇴보할 것인가

하는 결정이나 또는 사회의 변혁과 개인의 변화를 위한 일을 할 것인가 하는 결정은 바로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

 

자아는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또는 우리가 스스로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는 자기 이미지의 껍질에 가까운 반면,

영혼은 더 깊이 내려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존재의 핵심에 가깝다.

 

비움의 상태는 치유받고 완전한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평생 동안 우리가 해야 할 폐기 학습과 재학습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한 집단의 죽음이 완성되고, 그 문을 열고, 텅 비우면, 그 집단은 공동체의 단계로 진입하는 것이다.

이 마지막 단계에서는 조용한 정적이 감돈다. 이것은 일종의 평화와 비슷한 것으로 그 전후에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이

쏟아지고, 슬픔과 기쁨의 눈물이 흐른다. 바로 이 시기에는 어느 누구도 의식적으로 치유나 변화를 시키려고 노력하지

않기 때문에 그 결과 놀랄 만한 치유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때다.

 

진정한 공동체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감정적 반응은 기쁨과 사랑이다.

 

"당신이 믿음을 가지고 있는 자라는 이해를 구하려 하지 말고,

당신이 이해하고 있는 믿음을 구하라."

 

안락사를 포함한 자살은 용기 있는 행위가 아니라 가장 의문스러운 오만.

바로 우리는 자신의 창조자가 아니므로 스스로를 파괴할 도덕적 권리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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