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읊조리고 기록하고 마음에 새기다 /일상의 단편과 에세이

메일함 정리


오랜만에 메일함을 정리했다. 


회사 메일외에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네이버 메일 뿐만 아니라, 

지금은 스팸메일로 가득찬 핫메일과 한메일에도 오랜만에 접속하여 

수취인이 있는지 없는지 언제부터 미확인 상태로 되어있었는지도 모를 메일들을 한페이지 한페이지 넘겨가며 확인해보았다. 


광고성 메일이라도 참고할 만한 것이 있거나 가끔이라도 챙겨야 할 필요성이 있을 것 같은 메일은 

해당 기관의 사이트를 다시 들어가 메일 주소를 네이버 메일로 변경해놓았다. 

(예를 들면, 한메일로 계속 수신되고 있었던 것 중에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오는 안내 메일도 있었고, 

 학부시절의 풍부한 아날로그 감성을 충족시켜준 대림 미술관의 이벤트 안내 메일도 있어서, 

 그런것들은 다시 네이버 메일로 돌려놓았다)  


아주 오래된 책을 먼지가 소복한 다락방에서 발견하여

페이지 겉을 덮고 있는 먼지를 살살 걷어내면서 내용을 살피듯,    

한페이지 한페이지 넘겨가며 그 예전의 메일들과 보낸이들의 이름, 그리고 메일 주소를 살펴보니 

플립북이 넘어가듯 지나간 기억의 책장을 더듬으며 잠시나마 잊고 지냈던 추억들과 마주하게 된다.


'1촌' 신청이 도착했음을 알려주는 싸이월드 초대메일, 

학부시절, 팀프로젝트를 하며 오고 갔던 메일

대학교 3학년때 참가했던 인턴십 관련 메일, 

겨울방학, 토익과 스페인어 스터디에 참여의사를 밝혀온 메일, 

취준생 시절, 수많은 기업의 합격/불합격 통보 메일과 원하던 회사의 입사 축하와 함께 입문 교육을 안내하는 메일.  


그 중에서 khu.ac.kr 로 끝나는 반가운 메일주소. 어렴풋이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경영학부 학과장 이셨던 이성호 교수님의 메일이었다. 

교수님은 내가 학부 3학년때에, 갑작스런 심근경색으로 고인이 되셨다.


이성호 교수님은 회계학 전공 교수님이시자, 

'나는 회계학 시간에 시를 읽는다'라는 책까지 출간하신 시인이시기도 하다.

회계학 시간에 눈가가 촉촉해지시면서 까지 시를 읖어주시던 뛰어난 감수성의 소유자 이시면서도, (비록 우리에겐 그로 인해 웃음을 주셨지만) 학부생들의 한사람 한사람 이름을 외우시며 학생들에게 따끔한 잔소리를 서슴지 않으셨던 학생주임과도 같은 교수님 이시기도 하셨다. 


교수님의 연구실을 방문하면 장시간에 걸친 잔소리는 각오 해야했다. 

'넌 지금까지 학점이 몇점인데, 정신이 있는거냐 없는거냐. 

복학해서 이번이 몇학기 짼데, 언제 공부를 할 것이냐. 

영어 점수가 그래 가지고 나중에 어디다 쓸 것이냐' 등등.. 

하지만 결국, 학생들이 부탁을 드리는 것은 가능한 한 작은 부분까지 신경을 써주시는 따뜻한 분이셨다. 

(학과장으로서 심지어 학부생들의 수강신청 정정까지 챙겨주시는 분이셨으니까)


그때는 까탈스럽고 유난한 교수님께 불만을 가지기도 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것이 다 교수님의 학생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었다. 


메일함에서 발견한 교수님의 메일도 

학부시절, 해외에 있는 가족과 떨어져 살며 혼자 등록금과 용돈을 벌어가며 생활하고 있는 내게 

교수님께서 나의 상황을 기억하시고 장학금을 추천해주신 내용이었다. 


네다섯줄에 불과한 짧고 무뚝뚝한 메일글 이지만, 

그 속에서 교수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 그리운 교수님의 얼굴을 떠올리며, 

먹먹한 마음으로 몇번이나 메일글을 나직하게 되뇌여 본다.  



교수님의 메일 뒤로, 팀프로젝트를 위해 오갔던 몇번의 메일들

그리고 인턴, 취업을 준비하며 주고받은 메일들을 지나 대학원 입학 후 오고가던 메일 속에..

드디어 반가운 이름이 보인다.  








그녀가 내게 보낸 첫 메일이다. 


대학원에서 만나 친구로 지내다가 이제 나의 아내가 된 그녀.

대학원 첫 학기 '기업교육방법론'수업 때 같은 조가 되며 발표준비를 하면서 내게 보낸 메일이다. 

잠이 참 많은 사람인데, 저 메일은 참 늦었다고 해야할지 이르다고 해야할지 모르겠는 시간에 보냈구나. 






대학원에 입학한 후 DSLR을 구입하면서, 나는 사진을 찍는 취미 생활을 갖게 되었다.

2012년 5월에는 아마 아내의 연구실에 놀러가 자주 점심을 함께 먹은 것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 연구실 창문을 배경으로 찍힌 아내의 사진은 지금 우리집 책장 한켠의 액자속을 장식하고 있다. 


 

2012년 10월, 

어머니께서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듣고 난 갑작스럽게 과테말라로 출국을 하게 되었다.

하늘도 공기도 길거리의 꽃도 모든 것이 색을 잃고 모든 것이 향을 잃은 것 처럼 느껴졌던 그 시절. 

나와 우리 가족에게 큰 위로가 되고 감사가 되었던 것은 아내가 매일 같이 보내준 말씀문자와 기도메일 이었다. 





아픔 가운데에 있는 우리 가족을 위로하고 다시 일으켜 세워준 것은 

지구의 반대쪽에서 고통 가운데 순간 마다 찾아왔던 그녀의 말씀문자와 기도메일 이었다. 







2년 전 이 맘 때쯤, 우리 가족은 참 아팠다. 

갑작스런 어머니와의 이별은 평온했던 우리 가족의 삶에 먹구름 만큼이나 어두운 그림자를 몰고 왔다.


하지만, 고난이 더할 수 없는 감사가 되고 축복이 된 것은 

많은 분들이 아낌없이 주신 위로와 사랑, 

그리고 15시간 이라는 시차를 둔 땅에서, 지금 이시간에도 우리 가족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 기도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믿음 덕분 이었다. 


  




인터넷 환경이 좋지 않은 과테말라 였지만, 

너무 고맙고 그리운 마음이 가득차 약한 와이파이 신호를 겨우 찾아서 아내에게 아래와 같은 답장을 보냈더랬다. 








지난 메일함을 정리하다보니, 

이 공간과 시간 속에서 지금의 '나'라는 사람이 되기까지 무수한 인연들이 영향을 주었다 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각자의 목적을 위해 주고받은 인사 메일로 시작된, 그 옛날 낯선 인연들 가운데에는, 

지금은 더없이 소중하고 고마운 사람들이 된 나의 인연들이 있다. 


시간이 지나고 기술이 발전하여 이제는 스마트폰을 이용해 안부를 주고받게 되면서, 

서로가 나눈 이야기와 당시의 감정들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기억을 넘어 아무도 모를 허공속을 헤매이는 것만 같다. 


불과 몇년 전, 

받는 사람의 얼굴과 추억을 떠올리며,

키보드의 delete키를 눌러가며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고, 단어 하나하나를 고심했던 이메일은

이제 주로 회사의 업무 용도로 밖에 사용되지 않지만,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 단호하게 휴지통으로 보내지 못한 이유는, 

아직까지 메일 수신함에 남아있는 보낸이의 반가운 이름과 그 안에 담겨있는 갖가지의 내용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의 발자욱 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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