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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이 이끄는 삶

2011 나만의 5대 뉴스

 

2012년이 시작된지, 이제 딱 7일,일월화수목금토- 일주일이 지났다.

지난 2011년을 조금 뒤늦게 돌아보며, 나만의 뉴스를 정리해본다.




1. 소명있는 교육담당자로서의 삶 

-  2009년 1월 입사후, 2년간 비정규직관리, 인원현황, 인사발령, 조직개편, 경력사원 채용, 평가 등 HRM분야의 다양한 (조직의 성격만큼, 굉장히 다이내믹 하였다;;;)  업무를 경험하고,  2011년 공채18기 신입사원 그룹연수 지도선배를 시작으로 HRD담당자로 변신을 하였다. 많은 감동을 주고 받은 공채18기 연수, 처음으로 총괄이 되어 진행한 19기 사내 연수까지... 
그때의 주고받은 눈빛과 마음속에 가지런히 자리잡은 추억, 장면장면들이 눈을 감아도 선하다.

# 공채18기 지도선배들



# 공채18기 6반 11팀


















 

# 공채18기 6반 12팀  



 

비단 신입사원 연수 뿐만 아니라, 사내어학교육부터 OJT, 멘토링, 본부 교육, 경력사원 교육, 승진자 교육, 
최근의 신입사원 교육과 연계하여 기획한 직무 기초 과정까지.. 과정수로만 보면 꽤나 그럴듯해 보이는, 그룹/자체 교육 과정들을 기획, 운영 하였다.  그룹교육이야 그룹에서 이미 기획한 교육과정에 참가자들을 추려 입소시키거나, 과정 운영시 스텝으로 참여해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면 그만이지만, 자체 교육 과정들은 기획에서 부터 운영, 예산집행까지 그야말로 Project Manager의 사명감을 가지고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교육담당자가 되어, 얻을 수 있었던 것이라면. 첫째는 사람이고,
다음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조직의 현안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여 분석하고,
교육을 통한 솔루션을 제공하려 노력하는 사고의 확장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PPT를 통해 머리속에 있는 생각들을 시각적으로,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기획력이라던지, Prezi, Slideshare등의 새로운 교육툴을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른것도 귀한 성과이다.


2. 말씀과 진리를 알아가는 삶

우리교회에서 리더를 맡게 된 것은 2007년, 새신자 리더 부터이다. 2006년 부터 지금의 교회에 출석을 하였고, 나는 또래들과 친해지기도 전에 어찌된일인지 훈련 과정을 밟고 있었다;  07년,08년 새신자리더, 09년,10년 GBS리더 (중간에 몇달동안 쉰적도 있긴 했지만..)를 수행하며 솔직히 말하면, 그 자리를 주님이 주신 귀한자리로 여기기 보다 일주일에 한번씩 돌아오는 부담스러운 자리라고 여긴적도 있다. 조원들과 모임을 가질 때에도, 성경을 나의 지식과 기술에만 기대어 전한적도 있었고, 말씀에 대한 깊은 묵상 없이 막연하게 삶 나눔으로만 시간을 보낸적도 있었다. 

잦은 출장을 핑계삼아 리더 자리를 잠시 내려놓았을때,  NLTC과정을 통해 주님께서 지금의 목사님과 말씀을 만나게 하셨고, 
그 이후로 말씀을 통해 깊은 진리를 깨달아가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 시간 동안 그동안 붙잡지 못한 신앙서적들도 많이 읽게 되었는데, 특히 이재철 목사님의 책이 내겐 큰 감명과 도전이 되었다. 

# 지난가을 우리조원들(새한, 유미, 성현)_의릉


조원들과 말씀을 기본으로 한 나눔을 통해 풍성함을 느끼기 시작한 시발점이 2011년 인것 같다.
조원들의 무한유혹(이번 한주만 쉬면 안되겠느냐~날씨도 좋은데 밖에 나가서 놀자~배고프다 뭐 먹고 시작하자~등등의..;;) 에도 아랑곳 않고, 모임을 시작할때 먼저 기도를 하고 말씀으로 먼저 그들에 다가가려 노력했다.

말씀을 입술로 읊조리고 삶을 나누는 것은 나이지만, 진정 이 말씀이 조원들의 마음속에 들어가고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내가 아니라 이 시간 우리 조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의 힘이라는 것을 믿으며, 진심으로 조원들이 진리를 소망하는 마음갖기를 나 역시 소망하며 말씀을 나누었다.    

그결과 우리 안에서, 정말 귀한 변화들이 있었다.
주일 성수를 잘 지키지 않던 후배가 조금은 늦을지언정 꼬박꼬박 매주 잊지않고 조모임에 참석하는 변화가 있었고,
자기 이야기를 남들 앞에서 잘 내어놓지 않던 후배는 어느덧 매주 자신의 일상과 고민을 털어놓는 수다쟁이가 되어 있었다.
늘 친구들과 장난만치고 예배시간에 졸기만 하던 후배는 말씀 한 구절을 자신의 페북과 카톡 대화명으로 걸어놓는 기적(?)을 보이기도 했다.

나에게는 섬김의 태도와 관련된 귀한 변화가 있었다.
사람을 끌어안고 끝까지 섬기는 마음.. 그것이 참으로 힘들다는 것. 하지만 참으로 복되다는 것. 그리고 결국 그 사랑이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 그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 농촌선교 (7월)_경남함양



 


3. 락(樂)을 즐기다, 밴드 공연 

신입사원 그룹연수 공식 밴드인 포세이돈 활동이 인연이 되어 친구가 된 택근이의 전화한통. 
'너 요새 밴드 하냐?' 

무대체질 좀 놀 줄 아는 보컬, 나. 
온전치않은 멘탈을 가진 야한 목소리, 민주. 
밴드이름을 위해 만들어진 그 이름, 베이스의 택근.
집에선 누나때문에 늘 찬밥신세지만 우리 밴드에선 글로벌 키워드, 리드기타의 에릭.  
배만 보면 직장20년차 부장님. 세컨 기타의 규선.
하와이안 샬랄라 어쿠스틱 공연을 꿈꾸는 낭만쟁이, 키보드의 정민.
브라질 유학가서 집에서 혼자 위닝하며 폐인놀이 한다는 드럼의 진형. 
 
추위가 매서운 2월, 어느 겨울밤. 강남역 부대찌게 집에서 밴드 '사탕발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내방역 '피플사운드'에서 주말마다 시작된 폭풍 합주.

피플 사운드 예약이 차거나, 외대를 다니는 대학생 멤버들이 시험때가 되면
외대 근처의 이름 모를 지하 연습실, 석계역 근처의 '블랙캣'등을 전전하며
4달간의 합주 연습을 이어 나갔다.

굶주린 우리의 배를 채워주던 곳은
내방역 근처의 김밥천국과 정체모를 식당 '돈키호테'.
특히 돈키호테는, 삼겹살 불판위에 군만두를 구워먹고 사이드 메뉴로 뻥튀기가 나오는 
어디에서도 구경할 수 없는 '퓨전식' 식당이다. 
삼겹살, 치킨, 족발, 자장면, 전골 등을 한번에 다루는 식당을 본적이 있는가.ㅎㅎ 



 



# 밴드 MT

중간에 단합대회로 가평쪽으로 밴드 MT를 가기도 하였다.



사실, 처음엔 밴드 이름이 없었다.
공연을 하기 위해 티켓 디자인을 하기 전에 본격적으로
밴드 이름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였는데...

나름대로 여러가지 아이디어들은 많았다.
'김밥천국 스페셜 정식'
'취미로 하는 밴드'
'못사는 집에 사는 시베리안 허스키의 출생의 비밀'  등등..

도대체 어디에서 부터 기인된건인지 지금은 잘 기억도 안나는
이름들을 대며 참 많이도 웃었다. ㅎㅎㅎ

결국 우리의 밴드 공연 곡 가사에 한 소절 나오는 사탕발림이라는
단어에 꽃혀 밴드명으로 결정.
 
그리하여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나온 공연 티켓이
바로 이것(↓) 이다.

(생각보다 이쁘다는 평을 많이 들었다ㅎ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밴드의 색깔과도 꽤나 어울리는 디자인 같다.)


 


지난 여름이 무척 바빴던 것 같다.
밴드 연습하랴, 신입사원 교육 준비하랴, 교회 리더 하랴, 특히 공연 D-Day인 7월23일은 19기 사내연수를 이틀 앞둔 날이었다.
아마 공연일을 일주일 미뤄 30일로 진행이 되었다면, 신입사원 필수 교육 과정으로 모든 신입사원을 공연 관람에 입소(?) 시켰을 것이다.ㅋㅋ

드디어 공연 당일날.
평소에 시도하지 않은 의상과 컨셉으로 무대에 서고자  전날 밴드 멤버들과 동대문 시장을 하루종일 배회하기도 했다.


 

 

 

나름 GD스타일을 표방하며 무대에 올랐다. 후후.

13곡을 선보인 공연은 앵콜까지 포함하여 90분 동안 진행되며,
성황리에 끝마칠 수 있었다.  














무대와 마이크는 늘 날 설레게 한다.
추운 겨울 작은 꿈을 가지고 모인 마음들이 함께, 어느 여름날 저녁 그 꿈을 이루던 날.

정통 롹 밴드! 사.탕.발.림 Forever !





4. 동생 신경이와의 동거, 가족간의 사랑을 경험하다.

2011년 6월 17일, 내 생일 바로 그 다음날에 동생 신경이가 드디어 한국에 입국 했다.

신경이로서는, 9살때 과테말라로 출국한 이후에 처음 경험해보는 한국생활의 시작이었다.
전날이 생일과 동생의 입국으로 이틀 연속으로 회사에 연차를 내고,
동생이 오전 일찍 들어오는 까닭에, 새벽에 일어나 아침 첫차로 인천 공항으로 향했다.

동생과 함께 산다는 것은 내겐 너무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의 스무살 이후 우리 남매가 함께 산 기간은 1년이 채 안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나는 과테에 갔을 때 동생과 둘만의 여행을 가기도 하는 등 동생을 알려는 노력을 하였더랬다. 

그렇다고 우리가 오랜시간동안 떨어져있었다고 서먹한 사이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아니, 오히려 더욱 애틋하고 다정한 사이랄까.

신경이가 한국에 도착하자, 내 삶의 중심이 회사와 함께, 신경이에게로 옮겨져 갔다.
주말엔 신경이가 가보지 못한 곳에 데리고가 구경을 시켜주며 시간을 함께 보냈고, 친척분들 댁에 들려 인사도 시켰다. 
대치동 학원가에 난생 처음 방문하여 상담도 받고, 학원에 보내기도 하였다. 
일년에 한번뿐인 여름 휴가도 신경이와 함께 농촌선교에 참여하였다.
평일날엔 내가 하루종일 회사에 있기에, 혼자 있을 신경이가 자뭇 마음이 쓰였다.
(나중엔 워낙 활동적이고 성격좋은 신경이가 교회 아이들과 금방 친해져서, 나보다도 매일 늦게 들어왔다ㅋ)


# 신경이랑_코엑스 아쿠아리움.



 


















신경이를 아끼고 위한다는 마음으로, 본의 아니게 신경이에게 이런저런 잔소리도 참 많이 늘어놓았던 것 같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신경이는 그런 나의 말들을 아무 거부감 없이 묵묵히 수용해주었다.
나는 그런 신경이를 있는 그대로 마음으로 덮어주지 못했다.
내가 이상적이라 생각하는 모습을 그려 놓은 채, 그곳에 동생을 맞추려고 했던 모습들을 발견한다.
신경이가 오히려, 나의 모습 그대로를 마음으로 덮어주었다.


짧은 기간동안 내가 선택한 반응을 그저 아무 거부 없이 온몸과 마음으로 받아준 유일한 사람.
내 동생 신경이.




신경이는 올해 스무살 대학생이 되었다. (녀석이 벌써 대학생이라니... 이런날이 오긴 하는구나. 하아..)
이번 여름, 신경이에게 줄 멋진 선물을 구상해봐야겠다. 




5. 다시 학생으로, 도전과 설레임이 있는 꿈을 꾸는 삶. 


2011년 12월. 
한해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귀한 선물을 받았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바라보았던 도전에, 또다른 문이 열렸다. 

(이 부분은 별도로 포스팅을 해야겠다.시간이... 졸리다)
  



역시나 2011년도에도 그분의 계획에 따라, 목적에 따라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것 같다.

더욱 풍성해질 2012년을 기대하며, 소망이 있는 삶을 그려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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