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읊조리고 기록하고 마음에 새기다 /일상의 단편과 에세이

머무는 사람

 

과테에서 늘 큰 도움을 주셨던 김집사님을 오랜만에 뵈었다.

김 집사님 내외는 병원에 누워계시던 어머니를 하루가 멀다하고 보러와주시며

가족인 우리보다도 끊임없이 어머니의 팔과 다리를 주무르시며

쉬지않고 뜨거운 기도를 부어주신, 우리 가족에게 큰 사랑을 안겨준 천사와도 같으신 분들이다.

 

오랜만에 뵌 김집사님도 엄마를 그리워했다.

엄마가 해준 보쌈을 아들인 나보다 더 많이 드셔보셨다며 자랑을 하신다.

 

엄마가 일을 하셨던 과테의 회사 식당 근처에는 아직 엄마가 일군 채소와 꽃들이 무성할터.

그것들은 엄마의 따뜻한 손길이었고 사랑이었다.

 

집사님은 잠시 그 광경을 그리시 듯 지그시 눈을 감고 "보고싶다 권사님." 하신다.

 

문득 내가 마지막으로 본 엄마의 얼굴을 그려보려 지나간 시간을 더듬어본다.

시간을 지나가는 풍경들이 빗방울 처럼 흐려져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3년전.. 회사에서 배려를 해주어 하계휴가에 일주일의 연차를 붙여 가족들을 볼 수 있었다. 

아빠와 엄마가 함께 일하시던 회사에 함께 가 엄마가 근무하시던 식당의 작은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루도 채 못가 나는 그곳에서의 시간이 싫증났다. 주변에 아무것도 할 거리가 없는 것들도 답답했고, 그래도 휴가를

이용하여 해외까지 나왔는데 그저 그 작은 방에서 지내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그리고는 괜시리 엄마한테 투정을 부렸더랬다.

  "나 여기 너무 답답해, 나 도대체 여기까지 와서 머해. 어디라도 가고 싶단 말이야"

  "뭐하긴 뭐해~ 그냥 엄마랑 같이 있는거지~ 엄마 옆에 있어주는 거지~"

  "아 나 정말 답답하다고!"

 

엄마가 원하는 것은 그저 당신곁에 내가 있어주길, 그 옆에 내가 머물러주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당시 내 머리속엔 쿠바의 아바나 거리와 코스타리카의 멋진 해변만 그리고 있을 뿐이었다.

결국 난, 동생과 함께 파나마로 여행을 다녀왔다.

 

시간을 되돌렸으면 하는 것만큼 미련한 생각은 없지만,

만약. 정말 그럴수만 있다면.

그 시간에 엄마곁에 머물고 싶다.

엄마 곁에 머물며 함께 회사 근처 밭에서 채소도 따고 꽃에 물도 주며 평화로운  그 오후의 시간을 최대한 길게 누리고 싶다.

엄마가 좋아하셨던 성경 속 인물 이야기와, 주일날 들은 설교 이야기, 교회 권사님들, 집사님들 이야기.

어렸을 적 외가집 이야기 들으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고 싶다.

그리고 아빠와 동생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트에 들려 삼겹살 사고 한국슈퍼 집에 들려 재미있는 DVD빌려서

집에서 함께 고기 구워먹고 쇼파에 넷이 나란히 앉아서 DVD보면서 연예인 흉보며 실컷 웃고 싶다.

 

 

사랑하게되면 함께 머물고 싶다.

늘 그자리에 있기만 하면 더 풍성한 사랑을 누릴 수 있을텐데, 우리는 늘 그 자리를 벗어나려 한다.

하지만 늘 뒤늦게 우리가 떠난 그 빈자리가 누군가에겐 아픔과 상처일 수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 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은, 그 자리에 변함없이 놓여있는 사랑 때문이리라.

 

이제 내가 먼저 머물러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잠시 떠나있더라도, 혹은 곁에 머문적이 없다 하더라도 늘 그 자리에 머물며 기다려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읊조리고 기록하고 마음에 새기다 > 일상의 단편과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Thanks to K  (2) 2013.09.23
배움에 대한 단상  (0) 2013.07.29
성과주의 인생  (0) 2013.05.17
온유함  (3) 2013.02.17
학습에 대한 주관적이고 경험적인 재정의  (3) 2012.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