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읊조리고 기록하고 마음에 새기다 /일상의 단편과 에세이

성과주의 인생


또 하루가 지나가고 다시 하루를 맞이하는 시간이다. 


늘 그렇고 그런 일상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절대 일상일 수 없는, 

이 시간이 지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매분, 매초들을 버리어가며 

또다른 내일을 향해 끊임없이 뜀박질 하고 있는 순간들이 지금 이 시간을 메우고 있을 터이다. 


2013년도 어느덧 5월 중순이고, 봄인가 했더니 

에어콘이 내뿜는 한기를 가득 안은 지하철 안에 짧은 바지와 치마를 입은 아가씨들이 즐비한,  

계절은 여름이다.  


시간이 덧없이 지나간다 라고 습관처럼 이야기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덧없이 지나가는 것이 시간인지 나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면, 더 정확히 말해 하루라는 시간을 어떻게 채우면

덧없이 사는게 아닌지, 아니 덧없이 사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지. 잘 모르겠다. 


따져보면 

늑장을 부리다가 금새 어둑어둑해지는 하늘을 바라볼 때,  

그리고 그 사이 해야했던 일에 대해 원했던 수준만큼 이루지 못한 수많은 오늘의 리스트가 생각날 때, 

또 그리고는 자신의 현재 처지를 논하다가 결국 자신의 나이를 들먹이며 한탄할 때,  

하릴없이 시간이 지나갔다며, 덧없다고들 이야기 한다.


신기한 것은 

나이탓 인지, 아님 기억을 덮는 분주함 탓인지 모르겠지만 

요새는 당장 지난주 아니 어제 일도 잘 기억이 안날 때가 많다. 


고등학교 동창 친구를 만난 날이 지난주 목요일이었는지 금요일 이었는지, 

지난 월요일 점심시간에 누구와 어느 식당에 가서 무엇을 먹었는지. 

심지어 어제 오전에는 내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냈는지. 


그래서 이런 나의 모자란 기억력을 보완하고자 다이어리에 소소한 일상들을 종종 적어놓긴 하지만 

함께한 사람의 이름과 약속 장소 등 몇몇의 짧디짧은 고유명사만 적어놓은 메모에는 

그날 느꼈던 우리의 대화와 생각, 정서는 보이지 않는다. 

다이어리를 나름 빼곡하게 채워놓은 메모는 시계의 초침과 분침이 끊임없이 움직이듯

일주일에도 몇번이나 다양한 곳에서의 약속장소와 사람들의 이름을 올려놓았지만,  

초침과 분침이 매순간 같은 궤적을 따라 운동하듯 결국 그 이상의 내용을 흘려보내지 못하고 

비슷한 공간에서 비슷한 수준의 글자들만 나열하고 있었다.


그래도 다이어리에 어떠한 내용이든 적혀있는 날이라면 

기억을 더듬어 그날의 일들을 필름 사진처럼 머리속에서 인화해 내곤 한다. 

하지만 아무내용도 적혀있지 않은 공백의 날은 좀처럼 머리속에서 인화해내기가 쉽지 않다.

분명 누군가와 무엇을 하긴 하였을 텐데, 아님 혼자서라도 어떤 일을 하고 있었을텐데. 

무엇을 하며 그날 하루를 보냈는지.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공백의 흔적이 내 머리속에서 함께 '동기화'된 것인지. 

지나간 그 시간은 내 인생에서 shift+delete키를 눌러 내용을 복구할 수 없는 비어버린 폴더 같다.


아무생각 없이 하루를 쉬는 것이 웬지모를 불편한 휴식이 되어버린 것이

실제로 하릴없이 떠나보낸 시간 때문인지. 이 세상이 준 정서 때문인지. 나의 생활 습관 때문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어쩌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도 오늘 하루 무엇인가를 남겨야 하겠다는 욕구에서 시작된 것일 수도.


침대 옆에 놓여있는 탁상시계의 초침이 '쯧쯧'거리며 혀를 차고 있다.